오오후리 : 20제 중 14.選択 (미하시x카노우)

etc/txt 2012. 9. 21. 23:14

크게 휘두르며 20제 中 14.選択
미하시 & 카노우



"...투수로서가 아니라도, 난 널 좋아해!!"

'하아.. 이거 어째 들어선 안 될 걸 들어버린 기분인데?'
카노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열렬한 고백 장면을 목격하려고 쫓아온 게 아니거늘,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미하시 렌. 지금 자신의 시야를 살짝 가리고 있는 수풀 너머로 보이는 소심한 친구는, 어쩌면 남자에게 인기를 얻는 타입이었던가.

"나.. 나도 아베가 좋아!!"

'...망할 하타케.'
그 순간 귀에 들어온 문장에, 카노우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한 것을 간신히 억누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대신 지금은 이 자리에 없는 같은 팀의 포수를 향해 마음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왜 내가 이런 장면을 보게 됐더라? 아 그래, 이게 다 하타케 때문이다. 빌어먹을 놈. 니가 미하시만 안 쫓아왔어도 내가 널 찾으러 안 왔을 거 아냐. 그럼 난 이런 거 안 봐도 됐잖아. 넌 나중에 좀 맞아야 돼.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에게는 직접적인 잘못이 없다는 것 쯤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퍼부을 대상이 필요했다.

난 미하시가 다른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 따위, 듣고싶지 않았는데.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져버린 듯 멍해진 머릿속에서, '투수로서가 아니라도 난 널 좋아해'라던 니시우라의 포수의 목소리와, '나도 아베가 좋아'라던 미하시의 목소리만이 뱅글뱅글 맴돈다. 아, 저놈 이름이 아베인가. 이 와중에도 그런 걸 확인하고 있는 자신이 왠지 우스워서,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카노우가 미하시와 처음 만난 것은, 아직 어리던 소학교 시절이었다. 가끔씩 함께 야구를 할 때면, 즐거운 듯이 활짝 웃던 어린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공을 주고 받는 게, 서툴러도 마냥 즐겁던 그 때. 그 무렵의 미하시는 잘 웃었다고 생각한다. 보는 사람이 같이 즐거워질 정도로 환한 미소였다. 지금도 종종 떠올릴 때면, 이유도 없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어쩌면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싶어서, 앞으로도 쭉 같이 야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함께 미호시의 중등부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 미하시도 자신과 똑같이 '투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러면 앞으로 서로 도울 때는 돕고 경쟁할 때는 경쟁하는, 좋은 라이벌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들떴었는데.

'...하지만 다 잘 되진 않았지....'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와중에 저쪽에 이쪽의 존재를 들킬 것 같아서,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그라운드로 돌아온 게 10분 전. 시합 개시가 머지 않았는데,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니 멈춰지지가 않았다. 카노우는 초조한 기분이 되면서도, 한켠으로는 사고를 정지시키는 일을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방금 전 목격한 장면과, 고이 간직해온 추억들이 맞부딪히고 얽히며 달려나간다. 머릿 속을 가득 채운 과거의 일들이, 카노우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이래서야 제대로 공을 던질 수 있을까 싶지만, 억지로 떨쳐내려고 해도 별 효과는 없을 것 같았다.

중학교 시절은 서로에게 있어 최악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투수라는 포지션을, 공을 던지는 행위 자체를 지나치게 좋아했던 미하시. 하지만 결정적으로 공의 속도가 느렸다. 아무리 볼 컨트롤이 좋아도, 이미 느린 공에 흥미를 잃고 실망한 포수는 그 점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미하시가 실력이 없다고 단정지었다. 그가 등에 지고 있는 에이스 넘버도, 실력도 없는 주제에 100% 편애로 얻어낸 것이라며 부 전체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카노우는 미하시의 던지기를 좋아하는 성격과 노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씩 다른 부원들을 상대로 반론을 펴기도 했지만, 오히려 동정표를 사 버렸다. 카노우는 좋은 사람이라 그런 놈을 감싸 준다, 라고.

'뭐 나도 진심으로 그 녀석 미웠던 적도 있었으니까 할 말은 없지만서도.'
미하시가 아무리 해도 마운드를 내려오려 하지 않는 점에, 카노우도 질렸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2학년 때.에이스로서 시합에서 던지고 싶은 욕심이 카노우에게도 당연히 있었다. 그걸 계속 참고 있던 탓에, 조금씩 쌓인 감정이 한계에 달했던 시점이었을 것이다. 카노우마저 손을 놓은 그 때, 미하시는 정말로 팀에서 외톨이가 되었다. 어느 누구 하나 감싸주는 사람 없이, 쓸쓸하게 공을 던지는 투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잘도 그런 잔인한 짓을 했다고 반성도 하건만, 그 때에는 당연히 그런 건 몰랐다. 만약 자신이 그런 입장에 처한다면, 하고 가정해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아 한 순간도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는 인간이 있다면,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존경을 표할 거다. 그리고 실제로 그 무렵부터 미하시도 완전히 풀이 죽었다.
여전히 단 한 구도 성의 없이 던지는 공은 없었지만, 사인도 없이 공을 던져야 했던 미하시의 모습은, 보는 쪽이 더 애가 탈 정도로 불안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던지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카노우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우연히, 스트라이크 존이 9분할 된 미하시의 연습용 표적을 보기 전까지는.

경악. 처음 그것을 봤을 때 느낀 것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그 이외의 것은 댈 수가 없다. 4분할도 대단하다고 하건만, 미하시의 표적은 그 경지를 이미 뛰어넘어 있었다. 그것도 단지 9분할로 만들어 놓은 것만이 아니라, 맞출 곳을 지시하면 정확히 그 위치에 공을 박아 넣는다. 흉내도 낼 수 없을 정도의 제구력이었다. 온 몸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저기 상처가 많은 표적은, 그대로 미하시의 연습량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렇게나 노력해 온 녀석을 이제껏 다들 편애라며 몰아세웠던 건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분명히 다들 눈치챘을 텐데, 어째서 그게 안 됐던 걸까. 뒷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심하게 충격을 받은 그 날 이후로, 마음 속에 새로운 감정이 태어났다.
- 그 열성에 대한 존경심과, 그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전부 결실을 맺게 해주고 싶은, 순수하고 깊은 애정.
그 이후로 카노우는 다시 미하시를 감싸주게 되었다. 기왕이면 미하시를 무시하는 다른 모두에게도 그 노력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미하시가 싫어할 것 같아서 그건 관뒀다. 무시했던 기간이 있는 만큼 어딘지 쑥스러워서 티는 못 내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범주 내에서 그의 편의를 봐 주었다. 예를 들면, 연습 시간 내내 미하시가 마운드를 독점해도 불평하지 않는 것. 자신은 부원들에게 미움받고 있지 않으니 연습이 끝난 후에라도 어울려 달라고 말을 꺼낼 수 있지만, 미하시는 입장이 틀리다. 그러니 연습 중에는 미하시가 던지고 싶은 만큼 맘껏 던지고 돌아갈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언제부터인지 웃는 얼굴을 보이지 않게 된 얼굴에, 다시 환한 빛을 돌려주고 싶었다. 지금처럼 늘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상태로 야구를 하는 게 아니라, 예전처럼 야구를 즐기게 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미하시는 미호시에서 벗어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깨닫지 못한 척 머릿속에서 덮어버렸다. 그가 미호시를 떠날 리가 없다고, 멋대로 단정지었다. 내가 여기 있는데 설마, 하고 근거도 없는 자신감을 내세워 허세도 부려보았다.

그래서 귀를 의심했다.
그의 전학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하지만 그대로 영영 멀어지고 싶지 않아서, 다시 만나고 싶어서.
그래서 '그 말'을 했던건데.

=

"...이건 완전 역효과잖아. 내가 운이 없는건가?"
"뭐가 역효관데? 운은 무슨 운?"
"으아?!"

그만 얼빠진 대답이 되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소리내서 중얼거리고 있었나. 카노우는 꼴사납다고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샌가 바로 곁에 오다가 서 있었다. 고등부부터 미호시에 들어온 부원으로, 칸사이에서 스카우트 되어 왔을 만큼 실력도 있고 신장도 커서 팀의 기대주가 된 녀석이다. 무서운 인상을 하고 있는 주제에 성격도 나쁘지 않아서 팀 내에서 평판도 좋다.

"...신경 꺼. 별 거 아냐."

혼잣말을 들킨 게 민망해져서, 카노우는 괜히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다도 그냥은 넘어가 주지 않았다.

"별 게 아닌데 아까부터 계속 심각하게 혼자 뭐 생각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 곧 시합인데 신경 쓸 수밖에 없지 않나?"
"진짜 별 일 아니라니까. 시합에도 지장 없...아."

문득 무언가가 뇌리를 스쳤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른 것 같았다. 아직은.. 되돌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다를 이용하면, 시합을 이용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오다. 부탁이 있어."
"? 갑자기 뭔데?"

비겁한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보고 싶었다.
카노우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날 미하시에게 이기게 해 줘."

다시 한 번, 함께 하고 싶어.
이 시합에서 우리가, 미호시가 이기면. 결국 그 팀에서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그러면 넌 날 다시 의식해주지 않을까. 돌아봐주지 않을까.
내가 있는, 그나마 익숙한 이 곳으로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미하시.

역시 난 같은 팀에서, 늘 손이 닿는 곳에서 함께 있고 싶어.





=





'....역시 난 운이 없나보네.'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허탈한 표정이 카노우의 얼굴을 뒤덮었다. 미하시를 되찾아오고 싶어서 열심히 던졌지만, 상대가 한 수 위였다. 시합은 결국 졌다.실력을 눈치채고 그 능력을 이끌어내 주는 포수를 만난 미하시는 깜짝 놀랄 만큼 대단한 투수가 되어 있었다. 중반 이후부터는 중등부 때 부터의 동료들도 미하시를 얕보지 못하고 있는 힘껏 대응하기 시작했지만, 늦었던가 보다. 카노우는 양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미하시를 깔보던 녀석들에 대한 분노가 다시금 밀려왔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이미 경기중에 한 차례 화를 냈다. 모두들 이해하고 최선을 다해 줬는데, 이제와서 또 불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미하시, 다시 미호시로 와 주지 않으려나..?"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카노우는 땅을 노려보고 있던 시선을 들었다.

"사과만이라도 하고 싶은데. 중학교 때..우리가 좀 심했다고 생각하고.."
"그러게.. 우리 미하시 계속 무시했잖아."
"...사과하러 가 볼래?"

누가 처음 말을 꺼냈는지는 몰라도, 그저 고마웠다. 모두들 미하시를 다시 보고, 미호시로 데려오고 싶다고도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이 기세를 타고 한 번 부딪혀 볼까. 카노우는 쥐고 있던 주먹에 더욱 힘을 넣고,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미하시에게 가서 사과하고, 돌아오지 않겠냐고도.. 해 볼까?"

그리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어쩐지 쑥스럽고 따끔거리는 느낌이었지만, 한 번 말로 꺼낸 이상은 밀고 나가고 싶었다. 부원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있는 몇초간이 평소와 달리 너무나 길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생각하면 긴장이 된 건지, 어느샌가 손바닥에는 땀이 배어 나왔다.

"찬성이야."
"나도."
"나도 찬성!"

곧이어 하나 둘 터져나오는 부원들의 말소리에 일순 어깨의 힘이 빠졌다. 될 지 안 될지는 해보지 않고는 모르지만, 일단 이걸로 미하시가 돌아오겠다고 했을 때에도 무리없이 팀에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었다. 미하시의 실력을 눈으로 보고, 겨우 모두가 그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도 만족스러웠다. 미하시가 미호시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도전해 볼 용기가 생겼다.

=

"...보상할 기회를 주지 않겠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한 결과, 대표로 말하는 것은 하타케가 되었다. 하타케는 중학교 3년 간 정포수이면서도 미하시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점에 대해 깊게 반성하고 있는 듯, 자진해서 자기가 말하겠다고 말을 꺼냈다. 그리고 지금, 니시우라의 다른 야구부원들과 미하시 본인을 앞에 두고, 사과의 말과 함께 깊게 머리를 숙이고 있다. 그 뒤를 잇듯이 차례차례로, 중등부부터 미호시에서 야구를 해 온 부원들이 머리를 숙인다. 그 속에는, 카노우 본인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다.

"...돌아와라."

대답을 듣는 것은 두렵지만, 듣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대답이 나오기까지의 얼마 안 되는 침묵이, 카노우에게는 길기만 했다. 게다가 숨으려 드는 미하시를 끌어다 자신들의 앞에 데려다 놓은 포수, 아베의 행동도 신경쓰였다. 자신들이 할 말은 대충 감을 잡았을 텐데, 미하시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자신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뒤엉켜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하려 노력하면서, 카노우는 미하시의 대답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돌아갈게'. 그 한마디면 정말 충분한데.

"나..안...돌아가."

일순 땅이 꺼졌다. 아니, 꺼지는 것 처럼 느꼈다.
예상하지 못했던 답은 아닌데도, 50%의 확률로 듣게 될 것이 정해져 있던 데답인데도 불구하고 실망이 너무 컸다. 실망이라기 보다도, 개인적으로는 절망에 가까운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눈에 들어온, 미하시의 뒤에서 안도한 듯한 표정이 되어 있는 아베를 있는 힘껏 한대 쳐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선택받은 자의 여유를 과시당한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어째서!!"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이유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거늘, 정신이 들어 보니 따지듯 외치고 있었다. 미하시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분명 저 포수가 있기 때문이다. 저 아베라는 녀석이 미하시를 인정해 주고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게 해 줘서, 니시우라의 팀원으로서 모두와 함께 어울려 야구를 즐기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나 잘 알고 있는데, 왜 굳이 또 묻고 있는걸까. 카노우는 혀를 차고 싶어졌다.

"네가 버리고 간 에이스 넘버, 나더러 주으라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이어지는 말은 그만 시비를 거는 듯한 말투가 되었다. 앗차 싶었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안 버렸어! 미호시의 에이스는, 언제나 카노우였는걸..."

하지만 즉각 되돌아온 대답에, 일순 허를 찔렸다. 너, 한 번도 나한테 마운드 내 준적 없었잖아. 그래도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내려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선뜻 내려가지 못할 정도로 마운드에서 던지는 것을 좋아했던 거라고 생각하면, 그 열정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걸 내가 억지 부려서.. 모두의 중학교 시절을 내가 망쳤잖아..! 내 탓에 야구가 안 됐잖아. ...그런데 난 사과도 안 하고 도망쳐서는.."

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서포트해주지 못한 건 이쪽인데. 그런데도 어째서 미하시는 저렇게 자책하게 되어 버린 걸까. 실력이 없었던 건 오히려 보는 눈이 부족했던 우리들 잘못인데, 그래서 미하시처럼 실력 있는 투수를 두고도 제대로 야구를 못 했던 건데. 고개를 푹 숙이고 얘기하는 그 모습에, 보는 쪽이 오히려 마음이 아파. 카노우는, 말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오늘은..와서 다행이야."

하지만 자책하는 모습보다도, 긍정적인 그 말에 더 슬퍼지는 건 왜일까, 미하시.

"..난 계속 모두와 함께 야구를 하고 싶었어. 오늘처럼...계속 그렇게 생각했어."
"..야구라곤 해도, 적이잖아."

계속 이어지는 미하시의 말에서, 아니, 이미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 시점에서 이미 그의 마음이 니시우라에 머무는 쪽으로 결정이 난 것을 확실하게 느꼈는데도, 카노우는 그를 한 번 더 떠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이 쪽으로 끌어당겨 보고 싶었다.

"..너 안 외로워? 전학까지 가버리고..!"

분명 미하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초조해진 탓일 거다. 그래서 평소라면 쓰지 않을 비겁한 방법도 써 볼 마음이 된 걸 거다. 카노우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하시는 외롭지 않을 리가 없다. 워낙에 낯도 많이 가리고 소심한 성격인데. 거기다가 학교까지 옮겨서, 새로운 사람들 틈에서 생활하면서 안 외롭다면 거짓말이 아닐까, 하고 멋대로 단정지어 버렸다.

"..안.. 외로워."

...하지만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오늘의 미하시는, 지금까지 카노우가 알아왔던 미하시와는 전혀 다른 인물인 것만 같았다. 이럴 거야, 저럴 거야 하고 과거의 미하시와의 사귐을 바탕으로 짐작했던 것이 전부 어긋나서, 당황스러웠다. 그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은 반응이 없었다. 중학교 졸업으로부터 지금까지, 이 얼마 안 되는 기간동안 사람이 이렇게 바뀌어도 되는 걸까. 이것도 시합 전, 미하시의 손을 꼭 잡고 좋아한다고 말하던 그 포수놈 덕분인 걸까.

- 그런 말 들으면, 내가 쓸쓸하잖아.

그의 '외롭지 않다'는 말에 한켠으로는 다행이라며 안도하면서도, 미하시를 전부 빼앗긴 듯한 느낌에, 조금만 긴장을 풀면 엉엉 울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한 미하시가 앞으로 함께 할 동료로 선택한 것이 카노우 자신이, 그리고 미호시가 아니라는 점이 서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너한테 그런 말 하는 게 아니었는데.
- 야구를 그만두지 말라는 말 따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다시 만나기 위해서
다시 함께 하고 싶어서
오직 그 일념으로 마치 주문을 외우듯 절실하게 외쳤던 자신의 말이

지금, 카노우는 조금 후회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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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여름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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