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후리 : 20제 中 08.どうする?(하루나x아베)

etc/txt 2012. 9. 21. 23:16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한 가지 것에 마음을 빼앗겨 주변이 보이지 않게 되는 상황을 한 번쯤은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대상은 같은 사람일수도 있고, 동물일수도 있으며, 물건이거나, 혹은 형태를 갖고 있지 않은 무언가일 수도 있겠지.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뜨겁고 습도 높은 바람에 한여름의 방문을 새삼스럽게 실감하면서, 멍하니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이 앉아 있는 벤치는 자그마한 공원의 구석에 위치해 있어 낮에는 잘 눈에 띄지 않을 법 하지만, 주변이 어둑어둑해진 이 시간에는 바로 곁의 가로등이 드리우는 불빛에 오히려 시선이 머물기 쉬운 포인트이기도 했다.
짧고 검은 머리는 체육계 학생의 전형적인 그것. 더불어 곁에 놓인 크로스백에서 삐져 나온 글러브가, 그가 운동을 하고 있으며 어떤 종목의 선수인지까지 확연히 알려주고 있었다. 연습 후의 귀가길인지 조금 지친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그 얼굴은 어디까지나 진지해서, 어딘지 쉽사리 접근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준다.

- 소년, 아베 타카야는 지금, 자신을 휘두르고 있는 '어떤 사람'의 존재를 떠올리고 있었다.


크게 휘두르며 20제 中 08.どうする?
하루나 모토키 X 아베 타카야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면, 언제나 미간이 찌푸려진다. 좋은 기억이라고 해 봐야, 정말 한 손의 손가락 다섯 개로 꼽아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밖에 없다. 한 사람의 투수로만 보자면, 분명히 그 속도는 매력적이었다. 충분히 팀의 전력이 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과연 그 이외에는?
'그 사람'은 성격이 나빴다. 한 마디로 말해 더러웠다. 한 경기당 80구밖에 던지지 않겠다는 오만한 발언 하며, 서슴없이 남의 몸에 속구를 던져 상처를 입히고도 사과 한 마디 안 하는 뻔뻔함 하며, 인사치레로라도 어디 하나 성격 좋다고 말해줄 수 있는 점이 없었다.
그리고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동료를, 팀을 소중히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진심으로 던지면 이길 가능성이 보이는 시합이어도, 승리가 확실하지 않으면 단 한 구도 제대로 던지지 않았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프로가 될' 자신의 몸. 그리고 그런 그에게 있어 팀의 동료들은, 그 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연습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과 배터리를 짜고 있던 아베 역시, 그가 던지는 공을 받아줄 도구의 하나였다. 다른 모두가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다 해도, 분명히 도구 취급을 받았다고 자신있게 되받아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사인에 제대로 응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말인가. 응한다고 해도 제구력이 꽝이라 지시한 자리에 들어온다는 보장은 한없이 낮았지만, 그래도 무시당하는 것 보다는 기분이 훨씬 나았을 거다.

하루나 모토키.
그는 최악이자 최저의 에이스였으며, 다시는 그의 공을 받고 싶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그랬는데 어째서.

고등학교에 올라와 들어간 교내 야구부의 단체 활동의 하나로, 타교의 시합을 관전하러 간 것이 3일 전의 일이다.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를 보는 것도 중요한 공부의 하나라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일이니, 보러 가는 것 자체에는 전혀 불만이 없었다. 시합을 하는 두 학교의 이름 중 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무사시노 제1고교.
그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불쾌감과 긴장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되도록이면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은-야구를 하는 이상 전혀 보지 않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상대가 진학한 학교였다. 콘트롤 능력 제로, 성격은 바닥. 바로 그 하루나가 있는 학교.
보고 싶지 않았다. 무서운 게 아니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다시 만나면, 분명히 말을 걸어 온다. 그 사람이라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접근해 올 하루나를 떠올리는 것 만으로 어째서인지 소름이 돋았다. 내키지 않았다. 단체행동에서 혼자만 이탈할 특별한 이유도 없는지라, 결국은 시합 당일 관전석의 의자에 걸터앉는 처지가 되었지만 말이다.
예상대로 그는 아베를 발견하자 곧 다가와서 철망 너머로 이름을 불러댔다. 타카야, 타카야. 어이 타카야! 주변이 웅성거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연호하는 상대를 무시하는 데에도 금세 한계가 찾아와, 될 수 있는 한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의 앞에 섰다. 그리곤 될수 있는 한 짧게, 질문에만 대답하려는 아베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던 하루나는 이렇게 말하고 사라져 갔다. 너, 내 공 제대로 잡을 수 있게 될 때까지 반 년 걸렸지? 잘 봐둬. 또 잡을수 없게 됐으니까.
그 말에 은근히 열이 받는다. 괜한 참견이다. 어차피 난 이제 당신 공 잡을 일 없어. 다시 배터리를 짤 생각도 없네요. 그렇게 쏘아주고 싶었지만, 고등학생이 된 후 1년간 키가 훤칠하게 커버린 그는 걸음도 전보다 빨라진 것인지 눈 깜빡할 새 저 멀리까지 가 있었다.

곧, 시합이 시작됐다.
그리고 4회째에 투수가 하루나로 교체되고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베는 그의 시선을 느꼈다.
'잘 봐둬' 라는 말이 귓가에 들리는 듯한, 분명한 의미를 지닌 시선을.

=

".......대단해."
옆에서 들려온 감탄한 듯한 속삭임에 이끌려 현실로 돌아온다. 한 순간 뒤얽힌 시선에서 그가 무언가를 보여줄 심산이라는 것은 눈치챘지만, 설마 이런 것일 줄이야. 아베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얼핏 봐도 전보다 훨씬 빨라진 공.
예고도 없이 속구를 놓친 포수에게, 웃으며 사과하던 하루나.
어떤 것이 보다 충격적이었는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 머릿속에서, 오직 한 가지가 분명했다.

나는 / 저 공을 / 잡고싶다.

바로 얼마 전까지 품고 있던 감정과 상반되는 새로운 감정이, 맞부딪혀 불꽃을 일으킨다.
그렇게 험한 꼴을 당해놓고, 왜 이제와서?
정은 이미 있는대로 다 떨어졌을텐데, 어째서?

그 생각만이 시합을 본 이후 3일 내내,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맴돌고 있었다.

=

"...지금 거기 있는거, 타카야냐?"

연습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가던 길에, 오늘도 복잡하기 짝이 없는 머리도 잠시 식히고 몸도 쉴 겸 걸터앉은 참이었다. 한 30분만 쉬고 갈 셈이었는데,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주변은 완전히 컴컴하다. 이런이런, 하고 작게 혀를 차며 말이 걸려온 방향을 쳐다본 아베의 몸이, 순식간에 뻣뻣하게 얼어붇었다.

"...!!? 하..하루나..상?"

가로등의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 서 있는 사람은, 어두운 탓에 얼굴은 확실히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줄곧 생각하고 있던 인물임이 분명했다. 목소리, 체격, 말투. 얼굴 이외의 모든 것이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다. 사흘이나 자신을 흔들어댄 장본인이 바로 지금, 몇 미터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나타난 이 상황이 너무나 갑작스러워 오히려 현실감이 없다. 당황한 나머지 입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 이상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걸어오는 하루나의 모습이 아베의 눈에 들어왔다.

"너 여기서 뭐해?"
"....그러는 하루나상이야말로 뭐 합니까?"

그 웃는 얼굴에, 어째서인지 놀란 마음이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 사실이 겸연쩍어서, 뚱한 대답으로 얼버무린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 안정되고 나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 공원이, 시니어 시절 연습이 끝나고 돌아가던 길에 가끔씩 함께 들렀던 곳이라는 것.
대부분은 하루나에게 질질 끌려서 동행했던 듯한 기억이 든다. 연습장과도 가까운 이 곳에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사 먹으며 별 대단치도 않은 이야기를 하다가, 90% 이상은 말다툼으로 발전했었다. 건방진 놈이네 당신이 나쁘네 목청을 높이다 뚱한 얼굴로 헤어져 집에 돌아갔던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주 잠깐동안 지속됐던, 조금 사이가 좋아지려던 무렵의 일이다.
- 아, 그래서 이 사람 졸업한 다음부터는 여길 안 왔던 거였지. 1년이 넘도록 안 들렀던 곳에 어째서 오늘은 와 버렸을까. 후회가 되어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해버린 아베를 보며 어깨를 으쓱해보인 하루나가, 어느샌가 옆의 빈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놓여있던 가방도 멋대로 땅에 내려놓고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몸을 쭉 뻗는다. 반쯤 누워버린 듯한 자세가 된 그를 보는 아베의 입에서, 무의식적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 한숨 쉬네! 니 가방 내려놔서 불만이야? 아니면 내가 여기 앉는게 불만이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몸을 일으킨 하루나가 아베의 목에 팔을 걸어 조여대기 시작했다. 불시의 기습에 켁켁거리는 것을 무시하며 한동안 계속 팔을 풀지 않던 하루나가 겨우 해방시켜 주었을 무렵에는, 이미 아베의 몸은 배어나온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발버둥친 탓이다. 한껏 괴롭히고 나니 속이 풀렸는지 장난스럽게 씨익 웃는 그의 모습이, 며칠이나 자신을 고민시켰던 '그 때'의 '그 공'을 던진 '그 투수'와 겹쳐지지 않아서 아베를 혼란스럽게 했다.

"...왜 이런 데 있어요?"
"흐-응. 오늘 이 근처에 좀 일이 있어서. 온 김에 잠깐."
"아, 그렇습니까?"
"응."
"....."
"....."

혼란스러운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은 주제로 말을 꺼내보지만, 대화는 금방 끊겼다. 이 공원은 애초에 아베의 집에서는 가깝지만, 하루나의 집까지는 꽤 거리가 있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겨 던져본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명쾌하기 짝이 없었다. 오늘의 이 만남은 단순히 우연인 것이다. 시니어를 졸업한 이후로는, 두 사람 모두 딱히 올 이유가 없었던 장소. 그런 곳에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들르게 되다니, 우연 치고도 질이 나쁘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아베와, 어째서인지 멀뚱멀뚱 별도 하나 없는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하루나 사이에,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

"너,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냥 갔겠다."
"...?"
"시합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어색한 공기를 먼저 깨트린 것은 하루나였다. 땅을 보며 발끝으로 툭툭 흙을 차고 있던 아베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한 순간 무슨 얘기지, 하고 생각했지만, 곧 시합을 보러 갔던 날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속으로 혀를 찼다.

"단체행동 중이라고 했었잖아요."
"쳇. 그래도 건방져."
"뭐가 말입니까!?"

물론 그 날 기다리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체행동 중이라 못 기다린다고 한 것 역시 거짓말은 아니지 않은가. 혼자만 따로 남기에는 눈치도 보이거니와, 무슨 이유를 대고 남아야 할지도 애매했다. 시니어 때 선배가 남으라고 해서 좀 남아야 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도 뭔가 웃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단체행동을 우선시한다'는 당연한 대응을 했을 뿐인데 뭐가 건방지다는 건지, 아베는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연신 투덜거리는 하루나를 보고 있자니 그만 울컥해서, 자연히 목소리가 높아진다.

"...뭐 그건 그렇고. ...봤지?"

하지만 아베가 화를 내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는 듯, 그의 어조는 어디까지나 느긋한 채였다. 그래서 또 말을 알아들을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오늘따라 이 사람의 말에는 앞뒤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질문의 의도를 되짚어보던 아베의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그 변화를 확인하고 만족한 듯이, 하루나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어땠어?"

도전적인 눈빛이, 아베를 꿰뚫었다.

"그거, 받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지?"

이미 확신한 듯 물어오는 하루나의 태도에서, 흘러넘치는 자신감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그 당당한 태도와, 그에 상응하는 오만한 시선이, 며칠 전부터 계속 아베를 괴롭혀오던 감정을 억지로 끄집어낸다.
그 공을 잡고 싶다고 강하게 원했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욕구를.

"...누가요."

그것만은 절대로 하루나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 일념으로, 아베는 될수 있는 한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을 위장하고, 가능한 한 태연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며 부정의 말을 내뱉었다.
그렇지만 본심을 찔린 탓일까. 스스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대답에 텀이 생겨버렸다.
살짝 하루나의 얼굴을 확인하니, 그는 씨익 웃고 있다. 불안감이, 아베의 가슴 속을 휘저었다.

"타카야, 너도 나중에 프로 해라."

철렁.

"날 쫓아오는거야."

그리고 이어진 말에, 심장이 움직임을 멈춘다. 귀를 의심했다.
- 지금, 뭐라고?
웃기지 말라고 한 마디 해 주고 싶은데,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나가 떨어트린 폭탄과도 같은 문장들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어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그것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눈앞이 빙글빙글 돈다.

=

"...왜 그래야 하죠?"

아베가 어떻게든 마음을 추스리고 되물었을 때에는, 이미 상당히 시간이 지난 후였다. 흔들린 모습을 있는대로 다 보여버린 것은 분명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말투만이 퉁명스럽다. 그 점이 오히려 꼴사납다고 자각하면서, 아베는 초조하게 하루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너, 시니어 때, 나한테 단 한 구라도 진심으로 던져달라고 빌었던 적 있지."
"....."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미묘하게 동문서답이 되어 있었다. 아름답지 않은 과거를 건드려오는 점이 거슬렸지만, 이것이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 어딘가 연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끊을수도 없어서, 아베는 묵묵히 듣고만 있기로 했다.

"사인대로 던져달라고도."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꺼냅니까!!"

원래도 없던 인내심은, 하루나의 단 두 마디 말에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그와 배터리를 짜고 있던 시절의 기억은, 아프고 괴로운 일이 너무 많았던 탓에, 안 그래도 아베의 안에서는 터치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그걸 이제와서 굳이 화제로 삼는 무신경함이 믿어지지 않았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하루나는 그 때의 일을 조금도 잘못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 걸까.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져서 벌떡 일어나 하루나를 노려보는 아베의 시선을, 하루나의 시선이 똑바로 되받아친다.

"던져주지."
"!?"

그리고 그 시선에서 장난기가 전부 사라지고 대신 진지한 빛이 깃들기 시작한 것에 아베가 움찔한 것과, 하루나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또 하나 튀어나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프로가 된 후라면, 몇 구든 던져줄 수 있어. 사인대로, 그리고 진심으로 말이야."

숨이 턱하니 막혀온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는 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프로가 된 후의 하루나라면, 그 공을 잡고 싶어하는 포수가 사방 천지에 널려 있을 게 뻔하다. 굳이 공 하나 제대로 잡는 데 반 년씩 잡아먹는 자신같은 포수가 아니더라도, 더 실력 있는 사람들이 하루나를 원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하루나의 공은, 포수의 프라이드를 자극한다. 도전정신을 자극한다. 그것은 자신이 증명할 수 있었다. 다시는 배터리를 짜고 싶지 않다고 단언한 주제에, 위력이 더 올라간 공 하나에 그 마음이 산산조각이 났으니까.
그런데 왜 그 하루나 모토키가, 고작 아베 타카야 정도의 포수에게 이런 제안을 해 오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땡기지 않아? 내 공, 사실은 받고 싶으면서."

- 받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받고 싶지만, 받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아픈 건 싫었다.
이제는 하루나 모토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시니어 졸업과 함께, 그에게서 벗어났을 터였다.
하지만 벗어난 것은 육체적인 거리 뿐이고, 정신은 여전히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닌가?

자각해버린 욕구와, 그 욕구를 제지시키는 과거의 괴로운 기억이 뒤섞여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했다. 허용치를 초과해버린 데이터가 뇌 속에서 과부하를 일으키고 있었다.

=

그리고 잠시 후,
그렇게 그 자리에 고장난 인형처럼 서 있던 아베를 현실로 되돌린 것은, 입술에 와 닿은 타인의 체온이었다.
정확히는 뺨에 하나, 그리고 좀 더 습기를 머금은 것이 입술에 하나.
그것이 어느 틈엔가 벤치에서 일어나 곁에 와서 선 하루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을 때 시야에 들어온,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얼굴을 확인한 후였다.
자신의 뺨에 한 손을 대고, 입술에는 자신의 입술을 겹치고 있는 하루나의 행동에, 아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타카야."

맞닿은 입술이 떨어진 후, 어딘지 평소보다 상냥하게 느껴지는 하루나의 목소리가 아베의 이름을 불렀다. 젖은 입술을 슥 스치고 지나가는 엄지 손가락의 거친 느낌에, 번뜩 정신이 돌아온다.
키스가 이어진 것은 사실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아직도 완전히는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 채 숨을 몰아쉬는 아베를 보며, 하루나는 다시금 다시금 만면에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어냈다.
- 가로등 불빛 아래 떠오르는 그것은, 아까의 진지함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럽고, 또 하루나 모토키에게 가장 어울리는 표정이었다.

"이제 정신 좀 드냐?"
"...대체 무슨 짓입니까!!!!"

그리고 가볍게 툭 던져오는 그 말투가 언제나와 다름없이 가벼워서, 아베도 그만 평소처럼 버럭 화를 내며 대꾸했다. 방금 전의 일에 대해 심각하게 항의하려던 바로 그 순간에 맥빠지는 하루나의 발언에 선수를 빼앗겨서, 어중간하게 불이 붙은 분노는 그대로 기세가 꺾여 버렸다.

"뭐, 대답은 서두르지 않아도 돼. 물론 거절해도 전-혀 상관없어."

아니, 지금은 좀 더 어색하고 곤란한 분위기가 되어도 좋은 타이밍이었는데? 하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아베의 머리 위로, 커다란 손이 툭 덮여온다. 왠지 모르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는 하루나의 얼굴과, 그렇게 사람을 고민하게 해 놓고 '전-혀 상관없어' 따위 태평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입이 얄밉다. 아니, 하루나 모토키라는 인간 자체가, 엄청나게 얄미웠다.

"...당신은 비겁해."

나는 당신때문에 고민만 하고, 당신한테 휘둘리기만 하는데, 왜 당신은 그렇게 여유로운 거야.
분한 마음에, 아베의 입에서 지금까지 꾹 눌러서 감춰둔 진심의 파편이 불평이 되어 새어나왔다. 중얼거리면서 동시에, 자신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하루나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온몸으로 불만을 표시한다.

"뭐가?"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은근슬쩍 넘겨 버리고 천연덕스럽게 웃는 얼굴이, 짜증스럽다.


「그래서, 어떡할래?」
이미 대답은 알고 있는 주제에, 태연히 그렇게 물어오는 눈이 원망스럽다.


하루나상, 당신은 이미 중학교 때부터 알고 있잖아요?
-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무리 힘들어해도, 결국은 벗어날 수 없다는 걸.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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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2007년 여름. 후리에 겁나 휘둘리던 시절..-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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